It is the Korean Translation of Rev. Wongee Joh's post from the other day.
We would like to thank:
Rev. Suhee Kim, Pleasant Valley UMC and Dobbs Ferry UMC
Ohyeun Lee at Mid Hudson Korean American UMC
for their assistance with the translation!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안식처를 알아 볼 수 있을까?
그들이 생각하는 안식처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나의 안식처와 그들의 안식처는 어떻게 다를까?
17년 만에 다시 찾게 된 일본에서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일본은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라고 응답한
후에 가게 된 곳이었다. 내가 잊고 있었던, 일본을 여행했던 추억들이
새록 새록 떠오르면서, 한참을 감사함과 경외하는 마음으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사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든 생각은, ‘내가 왜 이 저널을 쓴다고 했을까?’ 였다.
14시간의 일본식 교토 관광을 마치고 와서, 도착하자 마자 처음으로 6시간의 잠다운 잠을 잤다. 첫 날 블로그를 올릴려고 했을 때는, 아무 것도 쓸 수 가 없었다.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
내 삶에서 가장 잘 한일이 바로 하나님께 “예”하고 응답한 것이었으며, , 그로
인해 내 삶이 얼마나 변했는지 깨닫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일어났다.
나는 이미 넘치는 일본의 음식과 이 순례여행이 줄 영적 양식에 마음이 벅차다. 히카리 목사님은 우리를 너무 따뜻하고
융숭하게 대접해 주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을 머무르는데도, 히카리 목사님의
우리를 위한 배려는 곳곳에 배어있었다. 히카리 목사님은 우리 팀 모두의 필요를 고려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돌보는 것을 잊지않음으로 우리의 안식처가 되주었다. 나는 일본의 관습들을 주의깊게 보면서 17년 전에 나에게 소외감과 이방인으로 느끼게 만들었던 일본의 전통 관습들이 주려고 하는것과 어떻게 일본인에게뿐만 아니라 오늘 여정을
걷는 나에게도 안식의 근원이 되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 그룹의 한 사람이 그가 새로운 상황에서 겪은 경험과 도전을 나눌때 마치 17년 전의 내 모습을 보는것 같았으며, 그와 같은 경험들이 지금 나에게
안식처가 되기 까지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깨닫게 했다. 17년이 지난 지금 하나님의 신실함과 그 은혜에
감사할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은 마치 내가 외국인으로 혹은 침입자로 여겨지는 곳에서
예상치 못했던 참 쉴 곳을 제공한다는 뜻이다. 내게는 그런 참 쉴
곳, 안식처를 제공한다는 뜻은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나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표현방식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여러 절을 방문하면서, 나는 마치 우리도 서로에게 이런 관광객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웅장한
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그저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일 뿐이다. 우리 중에 몇이나 서로를 예배하는 마음으로 대할까?
우리가 방문했던 절들은 각자의 고유한 점도 있지만, 공통적인 부분이 많았다.
우리는 선을 하시는 스님으로 부터 참선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처음 해보는 참선이었다, 15분 정도 침묵 속에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했다. 스님은 호흡을 하면서 숫자를 세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알려 주셨다. 내 경험을 말하자면 첫번쨰 15분은 무척 빨리 지나간다는 것과 자꾸만 참선의 “마음을 비우는” 연습이 그동안 내가 해온 크리스찬 전통의 호흡기도를 하는 것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처음으로 참선을 해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만약 내가 참선을 내가 하는 호흡 기도와 아침 묵상 찬송으로
대체했다고 얘기하면, 스님은 뭐라고 했을까?
숨을 들이마시면서, 내 안의 생명의 강물이
흘러 넘치네!
숨을 내쉬면서, 앉은 뱅이는 걷게 되겠고,
눈 먼자는 보리니.
숨을 들이마시면서, 감옥의 문을 열고,
갇힌자를 자유롭게 하소서!
숨을 내쉬면서, 내 안의 생명의 강물이
흘러 넘치네!
숨을 들이마시면서, 일어나라,
내 영혼이 평안하네!
숨을 내쉬면서, 일어나라, 내가 온전해질지니!!
숨을 들이마시면서, 일어나라,
평안을 내게 주소서.
숨을 내쉬면서, 그 생명을 넘치게 주소서.
선 스님과 함께한 참선이라는 새로운 경험은 나에게 안식처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17년 전, 나는 내 남편과 함께 서로에게 새로운 안식처가 되주었다. 그 때 나는 일본에 적응하는 것이 무척 힘이 들었었고, 그런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남편은 나와
함께 한국식 새벽기도에 같이 가주었다. 이렇게 같이 갔던 새벽기도는 나와 내 남편 그리고 4살된 아기에게도 안식처가 되었다. 우리는 새벽기도를 가면서 한 가족이라는 안식처가 되었고,
그 안식처는 감리교인으로써 우리 가족이 같이 함께 하는 동안 크나 큰 축복이었다.
나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나를 매일 새롭게 하시는 안식처이며, 내가 광야에서 헤메일 때에도
내 자신이 살아있는 성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오늘 나는 하나님의 임재로 황량한 사막이 안식처로 변화하는 놀라움 앞에 서있다.
그 성전이 사람이든, 장소이든,
아니면 우리 자신이든, 혹은 새로운 경험으로의 초대이든, 그 성전, 안식처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새로운 것이 오래된 것과, 모르는 것이 아는 것과, 친숙한 것이 이질적인 것과 만날 때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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